조선시대 노비가 면천받기위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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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2 추천 0 21.04.07 (수) 12:26






충무공 정충신

  

1.1576년 전라도 광주목에서 천민으로 태어남 

 

2.17세에 당시 광주목사 권율 휘하로 들어감. 일반병에 글도 몰랐으나 민첩하고 영리하여 권율의 총애를 받음

 

3.임진왜란 발발하자 권율은 선조에게 보낼 장계를 전달할 사람을 구하는데, 노비 정씨(정 충신)를 제외한 누구도 자원하지 않았음





4.정 충신은 그대로 광주에서 평안도 의주로 노빠꾸로 왜구들을 뚫고 선조에게 장계를 전달함

 

5.선조가 기특하여 어명으로 그를 평민으로 승격

 

6.이후 권율의 사위인 이항복을 스승으로 만나고, 스승에게 글을 배우고, 스승에게 정 충신이란 이름을 받고, 무과에 급제함

  

7.광해군 시절에는 조선 사신의 자격으로 명나라를 방문하고, 여진족의 동태를 살피곤 했음

 



 

8.스승 백사 이항복이 인목대비 폐비에 반대했다가 유배를 당하자 스승을 따라 같이 유배를 떠남. 이 때 백사북천일록을 남김

 

9.이후에 국경수비를 맡았고, 광해군이 조정 대신의 방해로 국서를 쓰지 못하자 국서 대신하는 셈으로 금나라에 보냄

 



 

10.인조반정 당시에 가담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전방에서 근무함

 

11.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괄과의 친분을 이유로 조정에게 의심을 받음

 

12.조정에서 반란분자로 의심받고, 전방에 남아있으면 반란군의 포위섬멸로 죽을 것을 생각해 성을 버리고 탈출

 

13.그럼에도 도원수의 명을 받들어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고 평안도 주요 거점을 포섭하도록 돕는 등 반란 진압에 앞장섬

 

14.반란 말기에 남이흥과 함께 이괄을 쳐부숨

 

15.정묘호란 때 부원수로 임명 받아 분전했으나 이괄의 난으로 터진 병력 손실을 극복하지 못해 활약하지 못함

 

16.병자호란 4년 전, 청과의 외교 단교를 반대하고 중립 외교를 주장하다 충청도 당진으로 유배당함

 

17. 심한 유배가 아니라 금방 풀려나고 포도대장, 경상병마절제사를 역임하다 병자호란 직전에 병세 악화로 타계. 향년 61세

 

18.충무공 시호를 내려받음

 

 

 

 

인생역전이라지만 어떻게 보면 말년 까지 반도에서 손에 꼽히게 구른 인물 중 하나

 

스승이 지어준 충신이란 이름 그대로 살다간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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