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평 (1954 ~ 2002)
80년대 초반 상위(한국 계급으로 치면 대위) 시절 전투기를 몰고 탈북했으며,
탈북자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 케이스이다.
김책공군대학을 졸업한 북한 공군 장교가 자기 비행기를 몰고 탈북했고,
한국에 가져온 기종이 MiG-19기로 동기종 최초였으며,
그가 탈북할 때 북한군의 기습공습인 줄 알고 전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었다.
이웅평 상위는 180cm 83kg의 근육질의 건장한 체격과 더불어 당당함과 침착함을 유지한 채
귀순 인터뷰를 하였는데,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남성스러운 면 때문에 '호방한 귀순 청년'으로 받아들여졌다.
공산 진영의 군수품을 가지고 올 경우 장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 법률에 따라서,
MiG-19기로 무려 15억 6천만 원을 받았다.
이를 2022년 기준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56억 원이다.
(참고로 당시 대치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천만 원이었고
탈북의 계기인 삼양라면이 1980년대 당시 100원, 1983년 안성탕면이 고급 라면으로 출시되어 150원이었다.)
이웅평 대위는 한국 공군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2002년에 사망했다.
(북에 남은 가족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90년대 중반에 접한 후
술에 빠져 살다가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마지막 사진이 그가 타고온 미그-19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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