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씨는 양씨가 아니라 김(金)씨입니다... 전쟁통에 입대하면서 성이 잘못 등록되어서..."
사고 당시 그는 '양창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본명이 김창선이었지만 급박하던 6.25 당시 행정 오류로 잘못 기록되는 바람에 양씨로 굳어졌다고 한다.
유일한 생존자 당시 35세의 김창선 씨는 좁디좁은 125m 어둠 속, 매몰된 대피소에서
15일 8시간 35분동안 도시락 1개를 나눠먹고 소변, 빗물을 마시며 악착같이 버텼다.
지상으로 올라온 김창선씨는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시력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낀 채 이송되는 김창선씨를 본 아내와 어머니는 김창선씨가
사망한 줄 알고 기절해 버렸다.
30년 동안 세계 광산 사고에서 최장기간 생존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던 김창선씨의 생환은
천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침착한 대처와 강인한 정신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김창선 씨가 사고 직후 정신을 차렸을 때, 7m 남짓한 공간 대피소에는 빛을 잃어가는 손전등 하나만
켜져 있고, 자신 외에는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김창선씨는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고, 돌더미를 손으로 뒤집어가며 손전등 불이 꺼지기 전
필사적으로 매몰된 통신선을 찾아내려 했다. 손바닥이 다 까졌지만 결국 손전등이 꺼지기 전, 통신선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18살 시절 해병대 학도병으로 입대, 통신병으로 6.25 전쟁에 참가한 김창선 씨는
도솔산 전투, 김일성고지 전투, 양도 전투, 장단지구 전투를 겪었고
이후 해병대 7기를 부여받고 53년 해병 일병으로 전역했다.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8일 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한 채 적 점령지에 고립되었다가 탈출한 경험도 있었고
인민군, 중공군과 피를 피로 씻는 참호전을 겪기도 했으며, 적의 포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끊어진 통신선을 연결하러 전장을 기어서 이동했던 경험도 있었다.
1) 갱도가 붕괴되어 어둠 속에 혼자 고립되었지만 패닉에 빠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손전등이 꺼지기 전, 통신병 시절 특기를 되살려 통신선을 찾아 복구에 성공한 점
2) 17년 전의 한국전 참전 경험으로, 체내 염분농도가 떨어질까봐 물을 마시는 것도 조절한 점
3)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 5일 ~ 8일 간 버틴 경험이 있었다는 것
김창선 씨는 구출 후 병원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음식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내가 죽으면 마누라가 고생할텐데... 경복(아들)이, 정애(딸)
중학교가면 공납금도 내야되고..."
"불이 꺼진 이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가끔 들려오는 통신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시간조차 가늠이 가지 않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꼭 살아나가서, 아들 딸은 끝까지 공부시키겠다. 반드시 살아나가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습니다."
라고 말했다. 김창선씨는 이후 충남에 거주하였으며
2022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하였고, 2월 7일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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